4년째 길 잃은 물가 목표
미 연준 (FRB)이 통화정책과 통화정치 사이에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정책적’ 본분과 경기 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발표된 데이터에 따르면, 미연준은 2021년 3월 이후 2025년 8월 현재까지 무려 4년 6개월 연속으로 인플레이션 관리 목표치인 2%를 초과하고 있다.
이는 기축통화국으로서 전 세계 비기축통화국들과 맺은 ‘물가 안정’이라는 묵시적 약속을 장기간 이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장기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팬데믹 당시 단행된 ‘무제한 양적완화’에 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단 2년 동안 공급된 본원통화(M0)는 약 4.6조 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연준이 지난 100년 동안 쌓아온 자산 규모인 4.2조 달러를 단숨에 추월한 수치다.
특히 주목할 점은 통화승수다.
당시 시중에 풀린 본원통화가 신용 창출 과정을 거치며 결제통화(M1)를 16.5조 달러까지 부풀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39배의 통화승수가 실물 물가를 밀어 올리는 강력한 엔진 역할을 했다.
현재 미연준 내부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지난 7월 FOMC 회의에서는 금리 동결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미셸 보우먼과 크리스토퍼 월러 등 일부 위원들은 0.25%p 인하를 주장하며 소수 의견을 냈다.
이들이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근거는 고용 지표의 악화다.
현재 미국의 전체 실업률은 4.2%, 청년 실업률은 10.0%에 달하며 관리 목표인 4%를 넘어섰다.
여기서 ‘통화정책(Monetary Policy)’과 ‘통화정치(Monetary Politics)’의 충돌이 발생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유지하거나 올려야 하는 것이 기술적인 ‘정책’이다.
반면에, 실업률 상승에 따른 표심 이반과 경기 침체 비판을 피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려는 움직임은 ‘정치’의 영역이다.
결국 2025년 9월 FOMC의 결정은 미연준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4년 넘게 방치하며 기축통화의 신뢰도를 훼손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물가를 잡기도 전에 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꺼낼 것인가?
분명한 것은 미연준이 내리는 결정이 단순한 숫자 조정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연준의 결정은 향후 글로벌 통화 질서와 달러 패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통화정치’가 ‘통화정책’을 압도하는 순간, 우리가 알던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는 돌이키기 어려운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투어개발대표 김성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