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출신 행정사계의 그림자
13년 권력 기생사를 추적하다.
대한행정사회의 실무 사령탑인 남상기 사무총장 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최근 비판적인 언론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며 분쟁의 중심에 선 그의 행적을 추적해 보자.
2013년 공인행정사 협회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명확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직책을 향한 집요한 집착’과 ‘권력의 흐름에 따른 기회주의적 처세’다.
남상기 총장의 정체성이 처음 드러난 것은 2013년 말, 유종수 회장이 공인행정사협회를 설립하던 시기였다.
당시 그는 협회의 내실을 다지는 실무적인 기여에는 소홀했다.
그보다는, 대외적인 직함을 얻는 것에 비정상적일 만큼 몰두했다.
특히 중앙대 대학원 출신이라는 배경을 내세워 홍보 라인을 장악하기 위해 유 회장에게 끊임없이 어필했다.
협회 내 실권을 쥔 인물들(박욥 행정사 등)을 포섭하기 위해 막후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이는 그가 행정사 업계의 발전을 고민하기보다, 협회라는 조직을 개인의 신분 상승과 세력 구축의 도구로 보았음을 시사한다.
그의 이러한 기회주의적 면모는 진영을 넘나드는 화려한 ‘갈아타기’에서 정점을 찍는다.
남 사무총장은 2022년 혁신비대위 시절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겉으로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뒤로는 김만복 전 회장과 ‘밀실 미팅’을 가지며 정치적 거래를 시도했다.
원칙을 지키려던 동료들이 이 부당한 야합에 항의하며 이탈했다.
그 때도 그는 자리를 지켰다.
이후 본인이 원하는 지분을 챙기지 못하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김만복 회장을 공격하는 저격수로 돌변했다.
그에게 ‘혁신’이나 ‘투쟁’은 오직 본인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 수단에 불과했던 셈이다.
하지만 화려한 언변과 정치 질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은 ‘무능력’이라는 벽 앞에서 매번 무너졌다.
황해봉 집행부 시절, 그는 본인만을 위한 본부장 직책까지 신설하며 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정작 실무에서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사회에서 연임안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으며 야인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직함을 따내는 기술’은 탁월할지언정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은 전무함을 방증한다.
몰락 이후의 재기
놀라운 점은 이러한 몰락 이후의 행보다.
야인이 된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윤승규 후보 캠프의 수족을 자처하며 권력의 사다리를 탔다.
결국 윤승규 회장의 당선과 함께 부회장이 된다.
그리고 그후 사무총장이라는 요직을 꿰찬다.
그는, 이제 본인의 부도덕한 과거와 집행부의 실책을 가리기 위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호위무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3년 전 홍보 일을 맡고 싶어 안달하던 초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는 본인의 밑천을 꿰뚫고 있는 이들을 법의 이름으로 탄압하는 노련한 정치꾼만이 남았을 뿐이다.
결국 남상기 총장에 대한 평가는 냉혹할 수밖에 없다.
그는 협회의 주인은 바뀌어도 자신은 살아남는 ‘생존의 달인’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행정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정치적 폐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칙 없는 권력 지향이 한 조직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13년사.
그는, 오늘날 대한행정사회가 직면한 혼란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