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피혁에서 래미안까지 100년의 역사
서울 지하철 2호선과 9호선이 교차하는 길목, 한강 변에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
영등포의 랜드마크이자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곳.
당산삼성래미안4차아파트.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면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곳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흘린 선혈과 땀방울이 화석처럼 굳어 있다.
1장: 쇠가죽 타는 냄새와 제국의 야욕 (1911~1945)
1911년 가을, 당산동 4가 96번지 일대는 거대한 연기로 뒤덮였다.
일제는 이곳에 조선피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영등포역에서 뻗어 나온 철길은 공장 내부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공장 안에서는 전국에서 공수된 전통 황소의 가죽이 끓는 가마 속에서 무두질 되었고, 그 역한 냄새는 한강 바람을 타고 영등포 전역으로 퍼졌다.
이곳에서 찍어낸 가죽 군화는 만주로, 중국 대륙으로 향하는 일본군의 발이 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자원과 인력을 갈아 넣어 제국의 야욕을 신기는 ‘전쟁의 심장부’였던 셈이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이곳은 고단한 삶의 터전인 동시에, 침략 전쟁의 부속품으로 소모되는 서글픈 현장이었다.
2장: 1950년 12월, 잿더미 속에 묻힌 진실 (1950~1953)
해방의 기쁨은 짧았다.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미군정의 관리를 받던 공장은 1950년 겨울, 운명의 날을 맞이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무너지던 1950년 12월 말, 영등포는 남하하는 철수 부대와 피란민들이 뒤엉킨 거대한 병목 구간이었다.
전략적 가치가 높았던 조선피혁 공장은 미군 공군의 집중 타격 목표가 되었다.
공중에서는 기총 소탕이 이어졌고,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은 폭격 한 번에 비명 소리를 집어삼키며 무너져 내렸다.
당산동 한 주민은 “이 터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전한다.
3장: ‘강남맨션’의 위용과 70년대의 풍경 (1974~1995)
전쟁의 아픈 기억이 있던 이 거대한 터는 1970년대 초반, 건설 자재와 건설업을 주름잡던 금강산업(현 KCC)과 진흥기업이 아파트를 짓기로 한다.
1974년, 5층 높이의 웅장한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서울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름하여 ‘강남맨션’.
지금의 강남구보다 앞서 ‘강남’이라는 명칭을 선점했던 이 아파트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었다.
넓은 동 간 거리와 현대식 설비를 갖춘 당시로서는 첨단 아파트.
하지만 그 화려한 아파트 단지의 정원 아래, 불과 20여 년 전 전쟁의 포화 속에 스러져간 영혼들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었다.
4장: 재건축과 랜드마크 (1995~현재)
세월은 흘러 1995년, 강남맨션은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의 길로 들어선다.
재건축 공사 현장은 다시 한번 거대한 먼지 구덩이가 되었다.
2003년, 마침내 삼성래미안 4차가 완공되었다.
이제 이곳은 영등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가 되었고, 지하철 2개 노선이 교차하는 초역세권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에필로그: 우리가 딛고 선 땅의 무게
오늘날 당산역 주변을 오가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땅이 100년 전에는 일본군의 신발을 만들던 곳이었음을, 75년 전 겨울에는 억울한 죽음들이 파묻혔던 땅이었음을.
부동산 가치와 평당 가격으로만 환산되는 이 땅의 가치는, 어쩌면 지표면 아래 켜켜이 쌓인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12월의 매서운 한강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당산동의 낡은 기록들은 다시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