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아르헨티나식 위험한 길로 서학개미 를 끌어 들이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24일 발표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와 해외 주식 양도세 비과세 방안은 언뜻 투자자를 위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보지 못했던 기괴한 ‘남미식 꼼수’가 도사리고 있다.
서학개미를 대상으로 한 이 정책의 뿌리를 추적하면 2016년 아르헨티나 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가 시행했던 ‘자본 사면법’과 맞닿아 있다.
법의 공식 명칭은 Ley 27.260 (Ley de Sinceramiento Fiscal)이다.
당시 마크리 대통령은 고갈된 외환 보유고를 채우기 위해 해외에 자산을 가진 국민들에게 세금을 깎아줄 테니 자금을 국내로 가져오라는 파격적인 미끼를 던졌다.
이는 국가가 정상적인 경제 운용 능력을 상실했을 때나 꺼내 드는 마지막 카드다.
아르헨티나 결국 IMF 구제금융 늪에 빠져
당시 아르헨티나는 잠시 달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 듯했으나, 결국 정부 신뢰의 파산과 함께 더 처참한 자본 유출을 겪으며 IMF 구제금융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서학개미의 자산을 환율 방어용 총알로 쓰려는 모습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실패한 망령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칼 폴라니가 경고했던 ‘허구적 상품’의 비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폴라니는 화폐와 노동, 토지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존재의 근간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는 환율이라는 숫자를 지키기 위해 조세 정의라는 사회적 계약을 서슴없이 파괴하고 있다.
국가가 특정 지표를 사수하기 위해 개인의 사유재산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심지어 선물환 매도 같은 위험한 파생상품을 개인에게 권장하는 행위는 경제가 사회를 집어삼키는 ‘악마의 맷돌’이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97년 IMF 외환위기 재발의 위험성
97년 외환위기의 현장 목격자로서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허상에 집착해 시장의 경고음을 무시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말이다.
지금의 ‘코스피 5,000’이라는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체질 개선 없는 인위적인 주가 부양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경제 관료들이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예스맨으로 전락하고, 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재갈에 묶여 침묵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방어막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결국 “공짜는 없다”는 진리는 이번에도 증명될 것이다.
양도세 몇 푼을 아끼려 RIA 계좌라는 ‘가두리 양식장’으로 들어가는 서학개미들은, 본인들의 자산이 국가의 실책을 가리기 위한 땔감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가 증명했듯, 무너진 정부 신뢰는 세금 감면 따위로 회복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세제 개편이 아니라, 시스템의 자정 작용이 멈춰버린 국가가 벌이는 위험한 도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