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생산의 한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 그 자체다
아르카디스 지표가 가리키는 한국의 민낯
20세기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 토지, 화폐를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의 태도를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ies)’이라 명명하며 경고했다.
2025년 현재,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아르카디스(Arcadis)가 발표한 건설비용 지수는 폴라니의 이 경고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잔인하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 제네바와 서울의 격차: ‘사람값’의 차이
아르카디스의 ‘2025 국제 건설비용 지수(ICC)’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는 세계에서 가장 건설비용이 비싼 도시 1위에 올랐다.
반면 서울은 전 세계 100개 도시 중 중위권인 50위권에 머물렀다.
1인당 GDP 3만 불을 넘긴 선진국 한국의 건설비가 왜 제네바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가?
제네바의 고비용은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무리한 공기 단축을 거부하며,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포함된 수치다.
반면 서울의 ‘저렴한 공사비’는 노동력을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른 상품으로 취급하며, 안전과 생명을 비용 절감의 도구로 삼아온 결과다.
2. ‘가장’이라는 도구, 그리고 현장의 폭력
폴라니의 지적처럼 노동이 상품이 되는 순간, 인간은 인격이 아닌 ‘생산 요소’로 전락한다.
한국의 남성 가장들이 건설 현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을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회적 압박과, 현장에서 안전을 챙기다간 동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집단적 폭력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노동을 상품으로 보는 시장의 시선은 가장을 ‘돈 버는 기계’로 정의하고, 그 기계가 고장(산재) 나면 산재보험금이라는 사후 정산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라는 비정한 인식을 낳았다.
3. 이재명 정부 고용노동부의 근본적 한계
이재명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음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노동 정책이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 구조 안에서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상품 가격 하락)을 위해 안전을 외면하고, 가장은 생존을 위해 위험을 구매한다.
노동이 시장 밖으로 끌어올려 지지 않는 한, 법적 처벌만으로는 이 잔인한 사슬을 끊을 수 없다.
4. 인구 소멸, 시장 질서에 대한 사회의 ‘자포자기’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는 결국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붕괴로 이어진다.
여성이 생물학적 시간을 놓쳐가면서까지 남성의 경제력을 따지는 것은, 이 사회에서 경제력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게 버려지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현장에서 갈려 나가고, 여자는 생존의 공포 속에 모성마저 억누르는 이 현실은 폴라니가 말한 ‘사회의 자기 보호(역운동)’가 출산 포기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결론: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아르카디스의 보고서를 보며 서울의 낮은 공사비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그 수치 뒤에 가려진 노동자의 비명을 읽어내야 한다.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얻은 경제 성장은 결국 인구 소멸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는 노동을 시장의 영역에서 인간 존엄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는 나라, 가장이 돈 이상의 가치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대한국민이여 대한민국 헌법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