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불이문 전경, 출처 : 범어사

2025년 12월 22일, 이 날은 음력 11월 초순에 드는 ‘애기동지’다.

민간에서는 아이를 점지하고 돌보는 삼신할머니를 배려해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해 먹는 날이다.

하지만 단순히 떡 한 조각 나누는 풍습을 넘어, 동지는 인류사에서 가장 긴 밤을 건너 ‘태양의 부활’을 기원하던 거대한 인문학적 분기점이었다.

2008년 런던, 운명의 장난 같은 ‘동지’

필자에게 ‘동지’와 ‘운명’은 남다른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2006년경, 가족과 함께 부산 영도에 터를 잡으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조심스레 ‘영도 할매’ 전설을 꺼냈다.

영도를 떠나는 사람에게 심술을 부린다는 봉래산의 수호신. 그저 미신이라 치부했지만, 삶은 묘하게 흘러갔다.

2년후 서울 본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인사부의 발령으로 맡게 된 산업은행 국제금융실 해외점포팀 런던 담당.

그 자리는 하필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최전선이었다.

런던지점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도하며 보낸 그 지옥 같은 시간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그 보직은 필자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동지의 밤’이었다.

미트라에서 미륵까지: 태양을 기다리는 마음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깊은 어둠을 알고 있었다.

천문학에 정통했던 마야인들은 동지의 별자리를 보며 제천 의식을 올렸고, 조로아스터교의 태양신 ‘미트라(Mithra)’ 신앙은 동지 무렵 메시아의 부활을 노래했다.

흥미롭게도 이 미트라는 동양으로 건너와 우리에게 익숙한 ‘미륵(Maitreya)’ 신앙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크리스마스 역시 본래는 동지 이후 태양이 다시 힘을 얻는 날을 축하하던 태양신 탄생 축제에서 유래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가장 추운 어둠 속에서 ‘구원자’와 ‘부활’을 꿈꿔온 것이다.

신광불매(神光不昧), 내 안의 빛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올해 필자는 산업은행 선배와 함께 다시 영도를 찾았다.

봉래산 자락에서 영도 할매와 해묵은 화해를 시도했다.

2008년의 그 매서웠던 풍파와 꼬였던 발령, 그 이후의 고단했던 세월을 이제는 놓아주기로 한 것이다.

범어사 불이문에서 마주한 ‘신광불매 만고휘유 입차문래 막존지해(神光不昧 萬古輝猷 入此門來 莫存知解)’라는 구절은 방황하던 마음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신령스러운 빛은 어두워지지 않아 만고에 빛나니,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세속의 알량한 지식과 계산을 다 내려놓아라.”

런던 지점이 어찌 될지 밤잠 설치며 계산하던 마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분석하던 그 모든 ‘지해(知解)’를 내려놓는 순간, 내 안의 빛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글을 마치며

올해의 애기동지는 팥죽 한 그릇 없이 지나갔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다.

영도 할매의 전설도, 2008년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도 이제는 태양의 부활과 함께 녹아내린다.

가장 긴 밤이 지났으니, 이제는 해가 길어질 일만 남았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신광(神光)’이 다시 환하게 빛날 차례다.

By 김도균 기자(dsajax0411@naver.com)

스카이메타뉴스 편집국장 김도균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전) 한국산업은행 제1회 시험출신 행정사 (전)소비자경제신문 기자 (전)금융산업노조 한국산업은행지부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