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오유경)는 수입 희귀의약품 엘라히어주 (미르베툭시맙소라브탄신)를 12월 19일 허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 보험 급여 절차를 진행해야 실제 환자에게 사용될 수 있다. 정부의 신속한 융합행정이 요구된다. 출처 : 스카이메타뉴스

융합행정 실종에 희망고문당하는 환자들

허가증은 있으나 처방전은 없는 기형적 보건 의료의 현주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9일 미국 애브비사의 신규 난소암 치료제 엘라히어 를 국내 품목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1호라는 수식어를 붙여 대대적인 성과로 홍보하고 나섰다.

그러나 의료 현장과 환자 단체의 반응은 차갑다.

식약처의 허가증은 단순히 약을 팔아도 좋다는 승인일 뿐이다.

정작 환자들이 이 약을 처방받아 몸에 주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인 건강보험 급여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뒤틀린 보건 행정 시스템 속에서 이번 허가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닿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자, 국가가 내린 잔인한 희망고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백금 저항성이라는 절벽, 왜 이 난소암 치료제 여야 하는가

난소암 환자들에게 있어 백금 저항성이라는 진단은 사실상 현대 의학이 제시할 수 있는 마지막 길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초기 난소암 치료의 핵심인 백금 기반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이 독한 암세포들은 마치 항생제 내성균이나 변종 바이러스처럼 지독하게 진화하며 살아남는다.

이들은 세포 내로 침투한 항암제를 밖으로 강제로 뱉어내거나, 약물이 결합해야 할 수용체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치료를 무력화한다.

통계에 따르면 난소암 환자의 70~80%가 재발을 겪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기존 치료제가 전혀 듣지 않는 ‘백금 저항성’ 단계에 진입한다.

전체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결국 1년 남짓한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 셈이다.

이들에게 이번에 허가된 신약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10%대에 불과했던 기존 치료 반응률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등장한 엘라히어는 생물학적 항체가 암세포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이 난소암 치료제는 그 등에 업힌 화학적 독약이 암세포 내부에서만 폭발하도록 설계된 최첨단 ADC 기술의 결정체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사망 위험을 35%나 감소시키는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보건 당국의 녹슨 규제 행정은 이 기술의 도입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내 소관 아니다”… 부처 간 핑퐁 게임에 멍드는 환자들의 골든타임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처 간 장벽을 허무는 융합 행정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난소암 치료제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면 융합은커녕 각 부처가 지 할 일만 하고 손을 떼는 이른바 칸막이 행정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한국의 신약 도입 절차는 식약처의 허가를 시작으로 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까지 이어지는 5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식약처는 신속하게 허가했다며 생색을 내고 물러나지만, 그 뒤를 잇는 기관들은 식약처가 검증한 안전성 자료를 신뢰하지 않고 각자의 잣대로 다시 검토를 시작한다.

기관 간의 자료 공유나 동시 심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식약처가 아무리 문을 빨리 열어줘도 환자들은 심평원과 공단이라는 다음 문턱에서 1년 이상의 세월을 속절없이 보내야 한다.

부처 간 책임 회피와 업무 떠넘기기라는 핑퐁 게임이 이어지는 동안 환자의 생존율은 하루하루 깎여나가고 있는 셈이다.

탈모는 ‘표’가 되고 감염병 예방은 ‘뒷전’인 정치적 우선순위의 오류

정부의 보건 재정 투입 우선순위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통령실은 최근 탈모 건강보험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중의 환심을 사고 있다.

그러나 탈모는 개인의 삶의 질과 심리적인 고통의 영역일 뿐, 생명의 위중함과는 거리가 먼 미용적 성격이 강한 질환이다.

반면 인유두종 바이러스인 HPV는 자궁경부암과 항문암, 두경부암을 일으키는 명백하고도 위험한 전염성 바이러스다.

세계보건기구는 남녀 모두에게 백신을 접종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OECD 국가들은 이미 남성 청소년까지 국가 의무 접종 대상에 포함해 암 발생의 뿌리를 뽑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고작 200억 원 수준의 예산 부족을 핑계로 남성 청소년 HPV 무료 접종 확대를 2026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

표심을 자극하는 포퓰리즘적 의료 정책에는 수천억 원의 재정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면서, 정작 암 예방의 핵심인 바이러스 차단과 생명이 걸린 난소암 치료제의 급여화에는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보건 행정의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무식한 행정의 전형이다.

제약 주권의 허상과 10년의 격차, 결국 외산 신약에 저당 잡힌 생명권

우리나라 제약 주권의 현실 또한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제약사들이 ADC 분야에서 기술 수출을 성사시키며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당장 임상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국산 난소암 치료제는 전무한 실정이다.

엘라히어와 같은 최첨단 약물은 일반적인 화학 복제약인 제너릭이나 생물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극히 어렵다.

특허 장벽은 향후 20년 이상 지속될 전망이며, 설령 특허가 만료된다 하더라도 항체와 독약을 정밀하게 결합하는 공정의 난이도 때문에 국내 기업이 복제약을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최소 10년에서 15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결국 앞으로 상당 기간은 글로벌 빅파마의 신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부가 수가를 통제하고 급여 등재를 지연시키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국내 환자들에게서 치료 옵션 자체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융합 없는 의료 개혁은 삽질일 뿐,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보건 행정은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이름 아래 환자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융합과 신속을 외쳐도 식약처와 심평원, 그리고 공단으로 파편화된 보건 체계가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면 모든 의료 개혁은 실효성 없는 삽질에 불과할 것이다.

허가와 동시에 약가 협상이 시작되고 급여 여부가 결정되는 통합 등재 시스템의 구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환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필수 과제다.

탈모 보험과 같은 선심성 정책에 매몰되어 암 예방 예산을 깎고 신약 도입을 늦추는 행태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정부는 지금 당장 난소암 치료제 엘라히어의 급여 등재 속도를 높이고, HPV 남녀 공통 의무 접종을 즉각 실시하여 국가의 본령인 국민 생명 보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서류 더미 뒤에 숨어 내 소관이 아니라고 버티는 동안,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난소암 환자들은 허가된 신약을 눈앞에 두고도 치료 한 번 받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리며 사라져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By 차심청 기자(csc@met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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