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너의 금광 채굴권부터 캄보디아 사이버 노예까지
21세기형 하이브리드 괴물의 실체
프롤로그: 세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물결’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뒤흔든 일련의 사건들—아프리카 수단의 내전, 러시아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그리고 동남아시아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벌어진 수십만 명 규모의 사이버 인신매매 사태—이 모두 하나의 거대한 축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전통적인 마피아나 카르텔을 넘어선, 초국가적 범죄 집단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TOC)라는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괴물이 자리하고 있다.
초국가적 범죄 집단 은 단순히 불법적인 사업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 국가를 능가하는 무장력,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는 첨단 기술을 결합하여, 마치 거대한 글로벌 기업처럼 활동하며 세계 질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현상은 이미 수십 년 전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그의 통찰력 있는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예견했던 ‘하이퍼 제국’ 시대의 도래, 그리고 그 속에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유목민적 세력’의 부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제 우리는 아탈리의 예언이 현실화된, 국가의 통제력을 넘어선 초국가적 범죄 집단 (TOC)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돈과 무력의 검은 결합: 용병과 자원 전쟁
TOC가 단순히 마약 밀매에 그치지 않는다는 가장 명확한 사례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민간 군사 기업(PMC)과 지역 민병대의 결합이다.
수단 내전은 이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러시아의 용병 기업이었던 와그너(Wagner Group)는 한때 러시아 정부의 대리인으로서 시리아와 리비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대리 세력이 아니었다.
와그너는 활동의 대가로 리비아의 에너지 사업,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수단의 금광 채굴권을 확보하며 자체적인 군사-경제 복합체를 구축했다.
특히 수단의 신속지원군(RSF)과의 연계는 TOC의 교활한 사업 구조를 보여준다.
RSF가 장악한 금광에서 채굴된 ‘더러운 금(Blood Gold)’은 와그너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거나 국제 자금 세탁에 활용된다.
이러한 현상은 TOC의 새로운 공식을 보여준다.
정치적 불안정, 천연자원, PMC(용병)의 결합을 통해 이들은 준군사력을 갖추고, 국가를 초월한 자금 네트워크를 완성한다.
와그너는 무력을 판매하고, RSF는 자원을 제공하며, 이 모든 거래는 국가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이중 거래(Double-Dealing)’를 통해 공식적인 배후 국가까지 배신하며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조직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와그너와 같은 조직은 국가 기능이 약화된 곳을 숙주로 삼아 자원과 이익을 빨아들이며, 아탈리가 말한 ‘하이퍼 분쟁’의 실질적인 주역이 된다.
특정 지역에서 압박이 들어오면, 이들은 군사 자산을 들고 다른 ‘최소 저항선(The Line of Least Resistance)’을 찾아 쉽게 이동할 뿐이다.
디지털 노마드의 배신: 캄보디아 ‘기업’과 사이버 노예
무력이 TOC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첨단 기술과 인간의 심리를 악용한 사이버 범죄이다.
이 잔혹한 실체가 극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동남아시아, 특히 캄보디아의 시아누크빌 일대였다.
이곳에서 활동했던 프린스 그룹(Prince Group)과 그 배후로 알려진 천즈(Chen Zhi) 같은 인물들은 표면적으로는 부동산과 금융업을 표방했다.
그러나 이들이 운영한 ‘스캠 단지(Scam Compound)’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해외 취업을 미끼로 유인하여 감금하고 강제 노동을 시킨 ’21세기형 사이버 노예 수용소’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강요한 범죄의 방식이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을 통해 피해자의 감정을 조종하여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급작스러운 금전적 위기나 고수익 투자 기회를 조작하여 돈을 갈취한다.
해외 취업 사기를 통해 한국인 청년들을 유인한 뒤, 현지 도착 즉시 여권을 압수하고 무장 감시 하에 온라인 도박이나 코인 사기 콜센터 직원으로 강제 투입하는 방식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갈취된 돈은 곧바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암호화폐로 전환된다.
암호화폐는 국경을 넘는 ‘유목민의 돈’이자, 추적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자금 세탁 도구였다.
캄보디아 조직들은 인신매매와 사이버 사기를 결합하여 막대한 현금을 확보하고, 이를 디지털로 세탁하여 TOC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한 지역이 문제가 생기면(예: 캄보디아 당국의 단속), 그들은 즉시 미얀마 접경 지역이나 라오스 등 다른 통제 불능 지역으로 거점을 옮기는 기업형 범죄의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필자 역시 로맨스 스켐에 당할 뻔 한 적이 있어 영등포 경찰서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캄보디아의 한 한국계 금융업체로 부터 영업부장으로 면접 기회까지 받은 적 있었으나 당시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국의 딜레마: 치안 불안정성과 TOC의 위협
TOC의 위협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TOC가 한국을 노리는 방식은 두 가지 경로로 압축된다.
첫째, 마약의 대규모 투입이다.
TOC의 주요 수익원인 마약(특히 펜타닐)이 동남아시아의 생산 거점에서 한국의 높은 소비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펜타닐과 같은 신종 마약의 유통은 한국 사회의 치안 시스템과 보건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둘째, 국내 자금 세탁 및 인력 유입이다.
한국의 거대 온라인 도박 시장과 첨단 IT 인력은 TOC의 매력적인 타깃이다.
국내 자본이 TOC의 해외 자금과 결합하고, 한국인 인력이 ‘취업’이라는 미끼에 속아 해외 TOC 조직에 유입되는 사례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국경 없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수사 시스템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
검찰의 수사 기능 축소와 관세청 등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역할 확대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해외 수사, 국제 공조, 첨단 디지털 포렌식까지 아우르는 TOC 수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중대한 과제이다.
TOC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경 관리(관세청), 조직범죄 수사(경찰/검찰), 해외 정보(국정원)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국제 협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 개편이 시급하다.
에필로그: 경계해야 할 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자크 아탈리가 말했듯이,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준비는 가능하다.
TOC는 국가의 취약점을 먹고 자라며, 세계화의 그늘에서 새로운 권력을 쟁취하고 있다.
TOC는 이제 단순한 범죄가 아닌 지정학적 위협이자 인류 문명의 질서를 교란하는 심각한 도전이다.
TOC는 ‘국가를 초월한 자본’과 ‘국가를 대체하는 무력(PMC)’을 갖추고, 통제력을 잃은 ‘허접한 국가’들을 거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기존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계심을 높이는 것이 첫걸음이다.
‘너무 좋은 조건의 해외 취업’이나 ‘이상적인 로맨틱한 만남’을 가장한 접근은 대부분 TOC의 유인책이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선 정보 공유(인터폴, UNODC)와 암호화폐 추적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서만 이 거대한 검은 제국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TOC와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안전과 자유는 이 전쟁의 승패에 달려있다.

TOC는 인류 문명의 질서를 교란하는 심각한 도전이다. 국제적인 공조를 통하여 박멸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