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택의 대표격인 아파트 단지 이미지아파트 단지 사진, 출처 : 프리픽

김도균 기자

인구가 줄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야 한다는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주택 가격은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다.
특히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오히려 초과수요가 ‘뉴노멀(새로운 정상)’로 자리 잡았다.
한국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유럽의 주택 시장은 지난 10여 년간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려왔다. 국제금융센터는 2일 Brief에서 “유럽은 주택 가격 상승, 가계의 주거비 부담 증가가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선거 구도에도 영향을 주는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가 도시 중심부의 주택 공급을 늘리지 못한 채, 인구 집중과 이민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
각국 정부가 토지 이용 규제와 환경 기준을 강화하면서 신규 건설이 줄었고, 이로 인해 집값과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했다.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주택 수요가 유지된 이유는 ‘가구 수 증가’ 때문이다.
결혼이 늦어지고, 이혼율이 높아지며,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필요한 주택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인구 감소가 주택 시장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여기에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과 코로나19 시기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더해졌다.
돈이 넘치는 시대에 부동산은 가장 확실한 투자처로 여겨졌고, 수요는 실수요를 넘어 투기적 수요까지 확대됐다.
2022년 이후 금리가 올랐지만, 이미 형성된 가격 구조를 흔들 만큼 공급이 늘지 않으면서 주택시장은 여전히 과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유럽의 흐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인구는 2025년부터 본격적인 감소세로 접어들 전망이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구 수는 2039년까지 계속 늘어난다.
혼인율 감소와 고령층 단독가구 증가로 인해 주택을 필요로 하는 ‘가구 단위 수요’는 여전히 증가 추세다.
즉, 인구가 줄어도 집의 필요성은 줄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다.
서울과 경기, 인천에 이미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방 인구가 빠지는 대신 수도권으로의 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의 주택 수요는 구조적으로 초과된 상태지만, 공급은 규제와 인허가 지연, 높은 토지가격으로 인해 제한돼 있다.
서울은 신축 택지가 거의 고갈된 상황이고, 재건축·재개발은 안전진단과 인허가 절차로 수년씩 지연된다.
공급은 막혀 있는데 수요는 줄지 않으니, 가격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 문제 해결을 핵심 공약으로 하고 있으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공급 정책을 내놓기 보다는 대출 규제 등으로 수요 억제 정책을 시도하고 있으나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뿐 부동산 가격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세제 정책을 통해 부동산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으나 과거의 부동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까 우려된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금리 인상 후에도 매물을 내놓지 않는다.
기존의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버티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 거래 절벽 상태가 되지만, 가격은 경직적으로 유지된다.
이는 현재 유럽 주요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흡사하다.

이러한 흐름은 주택이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자산 저장 수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에서는 자가보유에 대한 심리적 집착이 강하고, 장기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유럽보다 더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수도권은 초과수요, 지방은 공급 과잉이라는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은 단기간에 폭락하지 않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주택은 매수자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즉,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전체적으로는 정체되지만, 지역 간 격차는 더 커지고, 특정 지역의 주택은 ‘프리미엄 자산’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탄력적 부동산 공급정책의 필요성

이런 변화는 정부 정책의 변화 필요성을 요구한다.
단순히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공급의 공간적 배분과 구조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규제 완화와 인허가 절차 단축이, 지방에서는 노후 주택 정비와 공공임대 활용이 필요하다.
또한 장기 고정금리 대출 확대 등 금융 안정장치를 강화해 금리 변동에 따른 시장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

결국 인구 감소는 집값 하락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한국이 유럽처럼 ‘초과수요의 뉴노멀’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면, 이제는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형태로, 어떤 계층을 위해 공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By 김도균 기자

스카이메타뉴스 편집국장 김도균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한국산업은행 제1회 시험출신 행정사 (전)소비자경제신문 기자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