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가 장기화되며,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한 합작기업의 경영난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금융 정책 컨트롤 구조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지분 50%를 보유한 여천NCC는 국내 에틸렌 생산량의 약 14%를 차지하는 3위권 기초유분 생산기업이다. 그러나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 범용제품 가격 하락, 나프타 기반 원가 경쟁력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8일 여수 3공장이 가동을 멈췄고, 이달 말까지 약 1,800억 원의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나왔다.
문제는 정책 컨트롤타워 부재다. 한화는 1,5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반면, DL은 워크아웃을 주장하며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정책금융 집행기관이지만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정책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정책을, 기획재정부가 재정정책을 각각 쥐고 있는 분절 구조 속에서 부처 간 이해 조율과 결론 도출은 지연되고 있다. 위기 대응의 속도가 늦어지는 동안, 기업가치와 여수 순천 지역경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재확인시켰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국의 수입 수요 덕에 국내 NCC 가동률이 높게 유지됐지만, 최근 중국이 에틸렌·프로필렌·PP 등 기초유분 생산능력을 폭발적으로 확대하며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여기에 미국 셰일가스 기반 에탄 크래커, 중동 저원가 가스 기반 설비의 물량 공세까지 겹쳤다. 한국처럼 나프타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는 원가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고, 범용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도 가격 하락기에 치명타가 된다. 여천NCC의 위기는 이 같은 산업 지형 변화가 특정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남 여수산단은 국가 기간산업 거점으로, 약 290개 기업과 2만6천여 명의 직접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가동률은 81.5%로 하락했고, 2023년 매출은 전년 대비 19조4천억 원 줄었다. 여천NCC가 장기간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 협력업체의 연쇄 부도 가능성이 커지고 운송·정비·숙박·식당 등 지역 서비스업 전반에 불황이 번진다. 여수·광양항을 기반으로 한 산업물동량 감소도 불가피하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지역 경제와 세수, 고용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이처럼 파급력이 큰 사안임에도, 정부의 정책 지휘라인은 여전히 분절적이다. 대통령실이 위기 상황에서 산업·금융·재정을 일괄 조정하는 체계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산업은행 같은 집행기관은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현재 국정기획위원회가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을 준비 중이지만, 제도 개편 전까지는 대통령실 직속의 긴급 정책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개입은 단순한 유동성 지원이 아니라, 범용 설비 통합·고부가 제품 전환·친환경 전환 투자까지 포함하는 산업 구조조정 패키지로 설계돼야 한다.
여천NCC 사태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장기 생존 전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고 있다. 범용 제품 중심의 과잉 설비 구조를 고부가·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바꾸고, 탄소중립·친환경 규제 대응력을 높이며, 수출시장을 중국 중심에서 인도·동남아·미국 등으로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이 이러한 산업 재편과 정책금융 투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일시적 봉합에 그치고 더 큰 연쇄 위기의 전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천NCC 사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통령실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