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동 분쟁의 핵심에는 국가 없는 세계 최대 민족이라 불리는 쿠르드족이 있다.
약 4,0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의 접경지인 험준한 산악 지대 ‘쿠르디스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에게 산은 천혜의 요새이자 정체성을 지켜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을 고립시키고 분열시킨 창살 없는 감옥이 되기도 했다.
쿠르드족 살라딘
쿠르드족의 역사는 위대한 영웅 살라딘에서 시작된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영웅이자 예루살렘의 정복자인 살라딘은 사실 순수 쿠르드 혈통의 전사였다.
그는 용맹함과 관대함으로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와 기사도 정신을 나누며 대결했던 인물이다.
리처드 1세도 용맹함으로 영국 역사에 유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살라딘은 이슬람 세계의 정점에 서서 대제국을 건설하고도 정작 쿠르드족만의 국가를 세우지는 않았다.
이는 쿠르드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아이러니로 남았다.
이후 이들은 거대 제국들 사이의 완충 지대로 밀려나게 된다.
쿠르드족의 현대 비극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본격화되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인위적 국경선
당시 승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현지의 지형이나 민족 구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권에 따라 국경선을 인위적으로 그었다.
1916년 체결된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그 정점이었다.
이들은 석유 자원과 철도 노선을 기준으로 자를 대고 지도를 그렸다.
그 결과 한 뿌리였던 쿠르드족은 네 개의 나라로 갈기갈기 찢겼다.
이게 비극의 시작이다.
1920년 세브르 조약을 통해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받기도 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은 배신자였다.
열강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밀려 로잔 조약에서 그 약속은 파기되었다.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은 쿠르드족을 각국에서 탄압받는 소수 민족으로 전락시켰다.
특히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양국은 상대국의 쿠르드 반군을 대리전의 도구로 이용하며 이들을 철저히 배신했다.
전쟁 말기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자행한 할랍자 화학무기 학살은 쿠르드족이 겪어야 했던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쿠르드족이 사망한 사진은 충격적이다.
오늘날 쿠르드족은 이라크에서 자치 정부를 구성하고 시리아 내전에서 IS 격퇴에 앞장서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쿠르드 족을 투입시키는 전술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100년 전 제국주의 열강이 남긴 인위적 국경선이라는 ‘치유되지 않는 흉터’는 여전히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험준한 산맥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들의 생존 투쟁은 중동의 평화가 왜 그토록 멀기만 한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주변 민족, 서방 열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독립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