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위기와 기회 사이에 놓여
미국 현지시간 2월 20일,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청사에서 울려 퍼진 한 문장은 전 세계 통상 질서를 순식간에 재편했다.
대법원이 미 행정부의 강력한 무기였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와 펜타닐관세를 향해 ‘위법 및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한국 수출 기업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15%의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승전보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관세는 계속된다
법원이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 행사에 급제동을 걸자마자, 미국 정부는 곧바로 무역법 122조를 꺼내 들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10% 관세’라는 새로운 선전포고를 날렸기 때문이다.
법적 승리로 얻어낸 관세 인하 효과가 새로운 보호무역의 장벽에 다시 가로막힐 위기에 처한 순간이었다.
이에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는 판결 이튿날인 2월 21일 토요일 오전 10시, 평온해야 할 주말을 반납한 채 서울 기술센터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의 표정은 엄중했다.
회의실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해 미주와 법무를 담당하는 핵심 국·과장들이 모였다.
화면 너머로는 주미·주일 대사관 상무관들이 현지의 긴박한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타전했다.
우리 정부가 이토록 기민하게 움직인 이유는 대법원의 판결문 뒷면에 숨은 무거운 진실 때문이었다.
이번 판결로 무효화된 것은 오직 IEEPA에 근거한 관세일 뿐이다.
우리 수출의 핵심 기둥인 자동차와 철강에 부과되는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등 별개의 법령을 근거로 삼고 있어 이번 판결의 영향권 밖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미 행정부의 기습적인 ‘맞불’ 조치였다.
법원이 행정부의 권한에 급제동을 걸자마자 미 행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한 ‘글로벌 10% 관세 부과 포고령’을 전격 발표했다.
법적 근거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보호무역의 벽을 즉각 쌓아 올린 셈이다.
이로 인해 수출 현장에서는 15% 관세가 사라진 자리에 10%의 보편 관세가 새로 들어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대미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은 판결 이전보다 오히려 증폭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김정관 장관은 회의 내내 이번 판결의 법리 분석과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 그리고 이에 따른 주요국들의 동향을 입체적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판결문에서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은 ‘상호관세 환급’ 문제는 우리 기업들의 실질적 피해 회복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으로 지목되었다.
정부는 경제단체 및 협회와 긴밀히 협력해 기업별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한편,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합의를 근거로 미측과의 우호적 협의 채널을 가동해 우리 측의 지분을 사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제 통상 전쟁의 2라운드는 민·관이 함께 뛰는 총력전으로 전개된다.
정부는 바로 오늘인 2월 23일 월요일, 산업부 장관 주재로 업종별 영향 점검과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한다.
미 대법원의 판결이 던진 ‘자유무역의 복원’이라는 희망과 미 행정부의 ‘신규 관세 포고령’이라는 실리적 압박 사이에서, 대한민국 통상 당국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장 정교한 줄타기를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