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등 생산적금융 정책을 펼치고 있다. 출처 : 정책브리핑

저성장 늪과 금융 쏠림의 구조적 위기

최근 한국 정부가 생산적금융 (Productive Finance)으로의 강력한 대전환을 추진하면서 관치금융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생산적금융 정책은 금융 자원이 부동산 및 가계 대출이라는 비생산적 영역에 갇히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첨단 산업, 벤처 혁신, R&D 등 국가의 장기적 생산 능력을 높이는 분야로 자금을 유도하려는 거시적 금융 정책이다.

정부가 생산적금융 대전환을 절박하게 추진하는 배경은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 하락과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개별적인 ‘합리적 선택'(낮은 리스크와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가계/부동산 대출 선호)이 모여 가계 부채를 급증시키고, 미래 성장 동력에 필요한 모험 자본(Risk Capital) 공급을 막는 ‘거시적 비합리성’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생산적 금융은 바로 이 시장 실패를 교정하고, 금융이 실물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시키는 본연의 기능을 되찾도록 하려는 시도이다.

생산적금융 지향점: 성공 모델과 한국의 전략

생산적금융은 단순한 기업 대출 확대를 넘어 자금의 ‘질(Quality)’을 혁신에 맞추는 데 초점을 둔다.

역사적 성공 사례로 독일의 KfW(부흥신용공사)가 대표적인데, KfW는 전후 마셜 플랜 자금을 활용하여 장기 자본을 인프라와 중소기업에 집중 공급함으로써 독일 경제 부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한국 정부도 이러한 모델을 참고해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등을 조성하고, 은행 및 보험사의 벤처 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등 혁신 기업에 대한 장기 자본 공급을 확대하려 한다.

주요 시중은행들 역시 정부 기조에 맞춰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확대, 첨단 전략산업 전담 조직 신설, 그리고 기술금융(Technology Finance) 고도화를 통해 포트폴리오 전환을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은행 자본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본 풀을 벤처 생태계에 제공하며, 혁신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피할 수 없는 딜레마: ‘관치 금융’ 논란과 감독 체계의 한계

그러나 생산적금융은 관치금융 (官治金融)이라는 해묵은 논란을 동반한다.

정부가 자금의 흐름을 특정 분야로 강력하게 유도할 때,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리스크 판단이 정부의 정책 목표에 의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정부 압력으로 고위험 혁신 투자 비중을 늘렸다가 부실이 발생하면, 그 손실 책임이 금융기관과 예금자에게 전가되어 금융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현 정부가 대통령 공약이었던 금융 당국 ‘정책-감독 기능 분리’ 방안을 사실상 유보한 것은 이러한 관치 금융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겨준다.

금융위원회(금융위)가 금융 산업 육성과 건전성 감시라는 상충되는 기능을 모두 쥐고 있는 현행 체제에서는,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감독 기능이 정책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상존한다.

이는 금융 개혁에 소홀했다는 비판과 함께, 정책에 따른 잠재적 부실 위험을 객관적으로 감시하고 경고하는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한국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가 관치금융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시스템적 리스크 관리와 책임 보장

생산적 금융이 관치 금융이라는 굴레를 벗고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되기 위해서는 부실 위험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혁신 투자는 높은 실패율을 내포하므로, 중요한 것은 부실이 전체 금융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직접적인 개별 개입 대신, 위험가중치 조정이나 면책 제도 등 시장이 스스로 생산적 분야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정책 금융기관이 먼저 위험을 선분담하는 리스크 셰어링 구조를 명확히 하고, 금융기관의 선의의 투자 실패에 대해 책임을 면제하는 법적 면책 범위를 강화하여 소신 있는 투자를 독려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책 금융기관의 예산과 인사를 정부로 부터 독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생산적 금융은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 제고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불가피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 성공 여부는 정부의 일방적인 개입을 넘어, 금융기관이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 역량을 바탕으로 모험 자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장 친화적인 제도와 환경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에 달려 있다.

By 김도균 기자

스카이메타뉴스 편집국장 김도균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한국산업은행 제1회 시험출신 행정사 (전)소비자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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