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옹, 하윗, 모키르 노벨경제학상 수상… 혁신경제학으로 보는 한국 경제의 명암
노벨위원회는 세계 경제가 직면한 인공지능(AI) 시대의 성장 해법을 혁신 경제학(Innovation Economics)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 학자는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개념을 현대 경제학의 내생적 성장 이론으로 체계화하고, 기술 변화가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끄는지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아기옹과 하윗 교수가 수학적으로 정립한 창조적 파괴 모델은 새로운 혁신 기술이 등장해 기존 산업과 기술을 파괴하고 대체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AI와 같은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이 제조업부터 서비스업, 금융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는 핵심적인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AI의 경제적 기여도를 측정하고, 그 파급력을 관리할 정책적 도구가 바로 이들의 이론에 있음을 시사한다.
노벨경제학상…AI,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희망 메세지
만성적인 저성장 기조와 가속화되는 고령화로 인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는 한국 경제의 생산성 대도약을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행 등 주요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AI 도입은 한국 경제의 총요소생산성(TFP)을 최대 3.2%까지 끌어올리고, 국내총생산(GDP)을 4%에서 12% 이상까지 증대시킬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예측된다.
직무 중심 모형(Task-based Model)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AI가 노동 집약적 업무를 자동화하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증강(Augmentation)함으로써, 노동 공급 감소로 인한 성장 둔화 폭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과거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했던 한국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연구해 온 이 근 서울대학교 석좌교수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이 교수가 주장해 온 바와 같이, 기술 수명이 짧은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하여 선발국을 추월했던 한국의 DNA는 AI 시대에 새로운 혁신 경로를 탐색하고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제공한다.
창조적 파괴의 그림자…양극화와 고용 시장의 재편
그러나 창조적 파괴는 성장의 축복과 함께 고통스러운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AI의 도입은 모든 기업에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대기업과 기술 우위 기업에 생산성 증대 효과가 압도적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AI 활용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과의 생산성 격차를 심화시키고, 경제 내 양극화(Polarization)를 고착화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더 심각한 것은 고용 시장의 대규모 변화이다. 국내 일자리 중 절반 이상(51%)이 AI 도입으로 인해 직무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여성, 청년층, 고학력 계층에서 AI 노출도와 보완도가 동시에 높아지는 현상은, 이들이 AI의 도움으로 고부가가치 직무를 수행하는 기회를 얻는 동시에 자동화로 대체될 위협에도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필연적인 노동시장 재편 속에서 기술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절실하다.
혁신과 포용의 균형을 위한 제언
노벨 위원회의 선택과 국내외 연구 결과는 AI 시대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과 ‘포용적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함을 역설한다.
우선, 혁신 촉진을 위해 정부는 상금 인센티브나 선구매 계약과 같은 시장 형성 메커니즘(Market Shaping Mechanisms)을 도입하여 시장 논리만으로는 개발이 어려운 공공재 AI 개발에 연구 개발 방향을 공공의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
동시에, 파괴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수적이다.
아기옹 교수가 모범 사례로 제시한 덴마크의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모델처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되 실직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전 생애주기 교육(Lifelong Learning)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확대하여, 근로자들이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을 지속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AI 자산에 대한 공공 펀드 투자나 창의적인 선분배(Pre-distribution) 방안을 모색하여, 기술 혁신의 성과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정책적 담론을 서둘러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