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유럽연합(EU)이 역내 철강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수입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현행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고, 무관세 쿼터(할당량)도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공식화하며 한국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새 규정안을 발표하며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를 시사했다.
이번 조치는 2018년부터 시행된 기존의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내년 6월 종료되는 현행 세이프가드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성격이 짙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철강 공장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할당량을 줄이고 관세를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인상의 원인은?
EU가 강경한 조치를 꺼내 든 핵심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중국발(發) 철강 과잉 생산으로 인한 저가 제품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WTO 규정에 따른 기존 세이프가드의 강제 종료가 임박했다. 셋째, 미국이 이미 수입 철강에 50% 관세를 적용하고 있어, EU 역시 동일한 관세율을 도입함으로써 미국과의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향후 대미(對美) 통상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EU의 결정은 한국 철강 산업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럽은 지난해 한국의 철강 수출액이 44억 8천만 달러(MTI 61 기준)에 달하는 최대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일국가 기준 1위인 미국 수출액을 소폭 웃도는 규모다.
관세가 50%로 오르면, 무관세 쿼터를 초과하는 수출 물량은 큰 폭의 가격 인상 압박을 받아 EU 시장에서 사실상 경쟁력을 잃게 된다. 더불어 무관세로 수출 가능한 할당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국내 철강 기업들은 수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전체 수출 규모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과 EU라는 주요 시장 두 곳 모두에서 관세 장벽이 높아져 국내 철강업계는 수익성 악화와 수출 둔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투자자 고려사항은?
개인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단기적인 시장 충격뿐 아니라 장기적인 산업 구조 변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EU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 기업은 단기적으로 실적 우려로 인해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신규 매수 시점을 신중히 잡고 기존 포트폴리오의 위험도를 재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등 ‘그린스틸’ 기술 개발 및 친환경 생산 능력 확보에 투자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또한, 관세 장벽이 높아진 EU 및 미국 외에 수출 시장 다변화에 성공했거나 고부가가치 특수강 등 차별화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EU의 조치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수출 시장 다변화와 친환경 기술 확보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