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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기자

정부 핵심 전산망을 운영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서 지난 26일 발생한 화재는 국가 행정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주민등록 등본 발급, 민원 서비스, 금융·우편 업무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600여 개 시스템이 중단되면서 단일 거점 의존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된 것이다. 이번 사태 이후 전문가들은 효율성만 강조해온 전산 인프라 관리 패러다임을 안전성과 회복탄력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정학에서 말하는 가외성 원리도 주목된다. 가외성이란 일부러 중복된 장치나 체계를 마련해 위기 상황에서 기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원리다. 데이터센터의 이중화와 분산화가 바로 이 개념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효율성 논리에 따라 전산 자원을 대전과 광주 등 일부 권역에 집중시켜왔고, 이 과정에서 중복은 낭비라는 이유로 추가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화재는 바로 그 대가를 보여준 셈이다.

이중화·분산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정책 연구에 따르면 핵심 시스템만 백업하는 소규모 비상 서버센터는 500억~1,000억 원, 대전 본원의 절반 수준을 복제하는 권역별 센터는 2,000억~3,000억 원, 대전급 규모의 완전한 이중화는 4,000억~5,00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예산 규모가 작지 않지만, 전국적 행정 마비와 국민 불편을 고려하면 결코 비싸다고만 보긴 어렵다.

문제는 재정 우선순위다. 현재 2026년 정부 예산안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배정되어 있어, 이중화·분산화와 같은 안정성 강화 항목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불투명하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안전 투자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가 전산망은 단순한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된 기반시설인 만큼, 국민안전 항목 아래 별도 투자 항목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단일 거점 의존 구조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효율성에 치중한 기존 행정 패러다임을 넘어, 가외성 확보를 위한 이중화·분산화 예산을 조속히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재발 방지의 첫걸음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번 교훈을 놓치지 않고 제도적·재정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에만 있지는 않다. 국민 생활의 안전도 중요한 가치다. 최근 정부는 금융감독구조 개편 철회를 하면서 금융감독이 후퇴하지 않냐는 불안감을 일으키고 있다. 관치금융으로 인한 1997년 외환위기가 다시 재발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안전이라는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By 김도균 기자

스카이메타뉴스 편집국장 김도균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한국산업은행 제1회 시험출신 행정사 (전)소비자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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