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체결한 약 165억 달러(한화 약 22조 원)의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이 2025년 하반기 반도체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계약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사상 최대 규모로, 계약 기간은 2024년 말부터 2033년 말까지이며,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인 ‘AI6’의 위탁생산을 중심으로 한다.
이 소식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직접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약 사실을 확인하면서 시장에 급속히 확산됐다. 머스크는 “삼성의 텍사스 공장에서 AI6 칩이 생산된다”고 밝히며 “이 계약은 최소 165억 달러 수준이며, 실제 금액은 더 클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계약 발표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급등세를 보였으며,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이 드디어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 이 계약을 단순한 낭보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선 계약의 구체적인 수익성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테슬라가 협상 과정에서 우호적인 단가를 이끌어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 역시 공시를 통해 계약 조건의 세부 사항은 비공개이며, 향후 계약 변경이나 해지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이 세계 1위인 TSMC에 비해 수율과 고객 신뢰도에서 열위에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TSMC는 현재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 글로벌 주요 팹리스 기업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높은 수율과 정시 납품 능력을 기반으로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파운드리 외에 메모리,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사업을 병행하고 있어 고객사의 우선순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계약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우선 삼성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3나노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공정 또는 기술적으로 진보된 2나노 GAA 공정이 테슬라 AI 칩에 채택됐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 기술력에 대한 일정 부분 고객의 신뢰를 회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자율주행과 로봇 분야에서 전력 효율이 중요한 만큼, 삼성의 GAA 기술은 충분한 매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칩을 생산한다는 점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의식한 테슬라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으며, 삼성에게는 미국 내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는 추가 수주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계약을 바라보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삼성 파운드리 사업이 그간의 고전을 딛고 반등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계약 규모에 비해 실제 수익성은 낮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삼성의 기술력과 생산력이 머스크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보도하면서도, “TSMC와의 격차가 단기간에 좁혀지기는 어렵다”는 전문가 인터뷰를 함께 소개했다.
결국 이 계약은 삼성에게는 분명한 기회이지만, 동시에 시험대이기도 하다. 계약 규모만으로 주가를 판단하기보다는 실제 생산이 시작된 이후의 수율, 수익성, 후속 수주 등 실적 지표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장기적으로 삼성 파운드리 사업의 독립성과 경쟁력을 얼마나 키워낼 수 있을지가 향후 주가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