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한국가스기술공사가 22일 공개한 감사원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가스기술공사 전 본부 처장이 자신과 고향이 같고 같은 문중 출신인 인사의 토지를 감정평가나 예정가격 검토도 없이 약 5억 원에 매입하고, 소속 직원들에게 수주포상금 중 일부를 상납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간부는 포상금을 자신의 신용카드 결제, 휴대전화 요금 납부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해당 인물에 대해 파면 조치를 포함한 중징계를 요구하고, 금품 수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고위직의 권한을 이용해 조직 예산을 사적으로 전용한 이번 사안은 공공기관 예산이 얼마나 허술한 통제를 받으며 운용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사업은 충남 보령에서 추진된 LNG 주배관 건설공사로, 가스차단시설 설치를 위한 부지 매입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사업을 총괄하던 처장 B는 사내 실무자가 감정평가의 필요성을 건의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고향 사람의 땅을 예정가격도 없이 임의로 5억 원에 매입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감사원이 당시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한 결과, 해당 토지의 가치는 약 3억 1,735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1억 8천만 원에 이르는 과다 지출이 발생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당 토지는 기술적으로도 최적지로 판단되기 어려운 위치였으며, 실제로 최종 설계 시 가스배관이 80미터 연장되면서 1억 6천만 원가량의 불필요한 공사비가 추가로 발생했다. 내부 직원들의 감정평가 요구와 대체 가능한 매물 정보에도 불구하고, 본부 처장이 고향 인맥과의 개인적 관계에 따라 특정 토지를 선택한 정황이 감사 보고서에 상세히 기재돼 있다.
이 간부는 또 다른 부적절한 행위도 저질렀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수주포상금이 지급될 때마다 소속 직원들에게 포상금 중 일부를 이체하도록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A직원에게는 100만 원을, B직원에게는 세 차례에 걸쳐 총 238만 원을 요구해 본인의 급여통장으로 입금받았다. 이 금액들은 주택담보대출 이자, 신용카드 대금, 휴대전화 요금 납부 등 사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감사원은 확인했다.
기술공사 내부 감사에서 이미 유사 행위로 경고 조치를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더구나 일부 직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반발하지 못하고 포상금의 일부를 넘겼다고 진술했으며, 이에 대해 감사원은 사실상 직위를 이용한 강요라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기술공사 측의 “대체 가능한 토지가 없었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인근에 감정평가가 가능한 유사 매물이 존재했고, 실제로 매물로 나온 토지가 있었음에도 사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해명은 사실상 의도적인 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전 본부 처장 파면 요구…“공공예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중대한 위법행위”
이번 감사는 총 15건의 위법·부당 행위를 적발했으며, 이 중 2건은 형사 고발 대상으로 판단됐다. 그중에서도 본부 처장의 행동은 단순한 위법 행위를 넘어 공직자의 책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사례로, 예산의 사적 유용과 내부 직원에 대한 부당한 금전 요구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다.
공공기관의 자산이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윤리기강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큰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공기업의 내부통제와 외부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어떤 폐해가 발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감사원은 해당 간부에 대해 파면을 요구했으며, 관련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내부 진상조사나 재발 방지책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