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conomic Futures: Competitiveness in 2030 보고서 표지, 출처 : World Economic Forum

이아종 기자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4가지 시나리오로 본 미래 경쟁력 해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백서 《Global Economic Futures: Competitiveness in 2030》에 따르면, 2030년 세계 경쟁력의 향방은 지정학적 긴장과 규제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라 크게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액센츄어와 공동 발간한 이번 보고서는 기존의 경제 예측을 넘어,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통해 기업과 정부가 준비해야 할 전략 방향을 제시한다.

보고서는 경쟁력을 단순한 비용 효율성 개념에서 탈피해, 회복탄력성과 전략적 민첩성, 기술 혁신력, 인재 활용 능력 등 다층적인 요소를 포함한 포괄적 개념으로 재정의한다. 특히 팬데믹, 지정학 갈등, 기술 분열, 기후 변화 등 복합위기 속에서 ‘경쟁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됐다.

핵심은 두 가지 변수다. 하나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다른 하나는 사업 규제의 강도다. WEF는 이 두 축의 조합에 따라 2030년의 세계 경제가 다음 네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는 보호주의와 규제 강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Fortress Economics’다.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무역전쟁, 기술의 무기화 등으로 인해 세계화가 후퇴하고, 각국은 자국 중심의 경제체제로 회귀한다. 규제 복잡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중소기업의 생존이 위협받고, 기업들은 시장을 선택적으로 포기하며 지역화 전략에 집중하게 된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안정 속에서 규제가 강화되는 ‘Negotiated Order’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장기 전략과 규제 준수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ESG 규제, 기술 윤리 기준, 스마트 산업정책 등이 글로벌 질서를 이끄는 가운데,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기업은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규제의 벽은 혁신 확산을 지연시켜 성장의 한계도 존재한다.

세 번째는 규제가 느슨하지만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되는 ‘Survival of the Fastest’다. 규제 완화가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의 고성장을 이끄나, 시스템 리스크, 사회 양극화, 기술 윤리 공백 등으로 인해 장기적인 불확실성이 확대된다. 글로벌 거버넌스가 약화되고,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며 ‘규제 회피 경쟁’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는 지정학적 안정과 규제 완화를 모두 충족하는 ‘Fluid Order’다. 자유로운 자본, 인재, 기술의 흐름이 활성화되며 빠른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규제의 부재는 장기적으로 환경 파괴, 노동 착취, 데이터 남용 등 부정적 외부효과를 확대시킬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민간 주체가 새로운 규범과 기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된다.

보고서는 또한 산업별로 각 시나리오에 노출되는 리스크와 기회를 분석한다. 공급망과 무역에 민감한 제조업, 물류, 에너지, 여행 산업은 지정학적 불안정에 특히 취약한 반면, 교육, 의료, 건설 등 국내 기반이 강한 산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금융 산업은 규제 설계에 따라 방향성이 엇갈릴 수 있다.

WEF는 이와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과 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무회피 전략(no-regret strategies)’ 7가지를 제시했다. 핵심 역량 강화, 지정학 대응 능력 확보, 규제 대응 효율화, 미래 예측력 제고, 공급망 다변화, 단·장기 전략 병행, 전략적 파트너십 확대 등이 그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경쟁력의 미래가 단지 경제 지표나 기술 발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과 규제라는 정치적 요소와 그에 대한 대응 전략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WEF는 이 보고서가 정부와 기업 모두가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재설계하는 데 유용한 프레임워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 경제에 주는 시사점

세계경제포럼의 이번 보고서는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긴장과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높은 민감도를 보이는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은, 보고서에서 제시된 4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방향으로 세계 질서가 전개되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선 산업 정책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선택적 지원은 유효하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포괄하는 생태계 차원의 경쟁력 구조 전환이 요구된다. 단순한 규제 완화보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규제 체계를 도입하고, ESG 기반의 인증과 공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공급망 구조 또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중간재 수입의 상당 부분을 소수 국가에 의존하는 현 체계는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의 국산화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국가들과의 전략적 공급망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외교 정책과 산업 전략이 정교하게 연동되어야 할 시점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에 있다. 기술과 자본이 풍부하더라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다면 경쟁력은 유지되기 어렵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동시에,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평생교육 체계, 직업훈련 시스템, 그리고 고급기술 인력의 이민 제도 개선 등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

기업 차원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 능력이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일부 대기업만이 전담하던 리스크 분석과 공급망 다변화 전략이 이제는 중견·중소기업의 전략 과제로도 확산되어야 한다. 실시간 정보 분석, 투자 지역 다변화, 주요 규제 흐름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내부 의사결정 구조도 이에 맞게 재편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민간이 함께 미래 시나리오 기반의 장기 경쟁력 예측 체계를 정례화해야 한다. 기존의 단기 정책 중심 접근으로는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중첩된 글로벌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산업계와 학계, 공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예측·전략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데이터 공유와 정책 연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이 향후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제조 기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정학과 규제라는 새로운 변수에 대한 민첩한 대응, 구조적 제도 개혁, 전략적 사고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보고서는 그러한 전략 전환의 필요성과 방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2 thoughts on “2030년 세계 경쟁력, 지정학과 규제에 달렸다”
  1. 한국이 향후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정학과 규제라는 새로운 변수에 대한 민첩한 대응전략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 사업 규제의 강도 이 두 축의 조합에 따른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도출 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