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심청 기자
농촌진흥청과 질병관리청,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관계기관이 19일 공동으로 ‘슬기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예방 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했다. 이번 가이드는 사람과 동물 간 전파가 가능한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예방 중심의 교육과 실천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과 동물이 서로 전염시킬 수 있는 감염병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농업 및 축산업 종사자와 야외 활동자 중심으로 해당 감염 사례가 지속 보고됨에 따라, 정부는 농업인 안전 확보를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이번 예방 가이드는 동영상, 소책자, 강의 교안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됐으며, 농촌진흥청의 ‘농사로’ 누리집과 ‘농업인안전365’에서 누구나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지방 농촌진흥기관과 농업인단체, 방역 관련 협회 등에도 배포돼 전국 단위의 예방 교육 자료로 쓰일 예정이다.
현재 질병관리청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한 인수공통감염병은 총 13종이다. 이 가운데 농업·축산 분야에서 특히 주의가 요구되는 감염병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큐열 △브루셀라증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 등 4종이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은 참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고열과 오심,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치명률이 약 18.5%에 달한다. 현재로서는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작업 복장과 기피제 사용이 강력히 권장된다.
큐열은 감염된 가축과의 직접 접촉 또는 오염된 먼지를 흡입함으로써 감염된다. 비특이적인 초기 증상으로 진단이 어려운 데다, 조기 치료를 놓칠 경우 만성 질환으로 이행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브루셀라증은 감염 동물의 체액이나 태반 등이 피부 상처나 눈에 접촉하면서 전염된다. 증상은 발열, 두통, 관절통 등 다양하며, 방치 시 중추신경계나 심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은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나 포유류와의 접촉으로 발생하며, 고위험군인 농장 종사자와 방역 인력은 개인보호구 착용 등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편, 정부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예방을 위해 실무작업반(TF)을 구성해 대응체계를 강화해 왔다. 농촌진흥청은 교육 및 홍보 분과를 중심으로 실효성 있는 예방자료 제작에 집중했으며, 질병관리청과 농식품부 등은 예찰체계 및 비상 대응 지침 마련에 협력했다.
농촌진흥청 김경란 농업인안전팀장은 “가장 확실한 감염병 예방책은 개인보호구 착용과 위생관리 등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라며 “정부는 앞으로도 관계기관과 협력해 농업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정보
인수공통감염병은 단순히 가축과의 접촉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속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드기매개 감염병인 SFTS는 농촌뿐만 아니라 등산이나 캠핑 중에도 감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긴 옷과 모자, 양말 착용 등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큐열처럼 에어로졸(공기 중 미세 입자)로 전파되는 감염병은 직접 접촉 없이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가축 분만 시 마스크 착용이나 주변 소독이 필요하다. 브루셀라증이나 AI 인체감염증 역시 초기 증상이 감기나 몸살과 유사해 자칫 방심하기 쉬우므로, 증상이 지속될 경우 보건소나 병원을 찾아 직업과 활동 이력을 상세히 알리는 것이 조기 진단의 핵심이다.
현재 국내에는 SFTS, 큐열, 브루셀라증,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에 대한 상용 백신이 없어, 감염 자체를 막기 위한 개인의 주의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축산 농가에서 가축 감염이 의심될 경우에는 즉시 방역당국(1588-4060 또는 1588-9060)에 신고하는 것이 집단 확산을 막는 출발점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이란
최근 전 세계 보건 당국이 주목하는 감염병 키워드는 단연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동물과 사람이 서로 병을 옮길 수 있는 이 감염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활동영역이 자연으로 확장되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 빈도가 늘었고, 이는 곧 전염병의 새로운 경로를 열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은 말 그대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동물로’ 전파될 수 있는 감염병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 광견병, 탄저병, 브루셀라병, 그리고 최근 세계적 유행을 일으켰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알려진 감염병의 약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신종 감염병의 경우 그 비율은 75%에 달한다.
이러한 감염병의 등장은 대부분 동물과의 접점에서 시작된다. 야생동물 시장, 축산업, 사육환경의 변화, 생태계 파괴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병원체를 보유한 동물이 사람과 직접 접촉하거나, 오염된 환경을 통해 간접 전파가 이뤄질 때 감염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그중 일부 병원체는 변이를 거쳐 사람 간 전파로 이어지며, 집단 감염이나 전 세계적 유행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보고된 브루셀라병, 렙토스피라증, 쯔쯔가무시증 등 인수공통감염병 사례는 농촌 지역과 반려동물 보유가구 중심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질병관리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를 중심으로 ‘원헬스(One Health)’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인간, 동물, 환경을 하나의 건강 생태계로 보고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사전 감시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감염병은 예측이 어렵지만, 초기 발생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야생동물 모니터링 강화, 축산농가의 방역 수준 향상, 반려동물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수공통감염병 교육과 정보 제공 역시 필수적이다.
감염병은 더 이상 국경과 종(種)의 경계를 따르지 않는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통해 학습한 교훈은 분명하다. 감염병 대응은 질병 발생 이후가 아닌, 그 ‘이전’부터 준비돼야 한다는 점이다. 인수공통감염병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건강은 더 이상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물과 환경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