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종 기자
정부가 국내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18일, ‘수급불안정의약품 생산 지원 사업’의 수행기관으로 주식회사 보령을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국내에서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의약품에 대해 생산설비와 장비를 지원해 공급을 재개하고 증산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첫 지원 대상으로는 보령이 생산했던 고지혈증 치료제 ‘보령퀘스트란현탁용산(콜레스티라민레진)’이 선정됐다. 이 의약품은 국내에서 산모와 소아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고지혈증 치료제로, 2023년 채산성 악화로 생산이 중단된 바 있다. 이후 환자들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해외 구매에 의존해야 했다.
정부는 해당 의약품의 중요성을 반영해 2023년 4월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생산 재개는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보령의 생산설비 및 장비 구축을 지원하고, 연내 국내 생산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정은영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이번 사업은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생산 기반 마련을 위한 첫 지원 사례로, 앞으로도 국내 제약기업과 협력해 의약품 공급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보령 관계자는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돼 매우 뜻깊다”며 “보령퀘스트란현탁용산의 조속한 생산 재개를 통해 수급 안정과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백신 등 의약품 원부자재 국산화를 위해 성능시험(21억 원), 특허 분석 정보 제공(4억 원) 등의 예산을 편성해 중소·중견 제약사의 공급 기반을 강화하는 데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공공성과 산업성의 경계에 선 제약산업… 수급불안 의약품 대책, 보령 사례가 던지는 시사점
국내 제약산업이 공공성과 산업성의 이중 과제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고위험·고비용 구조 속에서도 국민 건강을 위한 필수의약품 공급 책임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제약사 간의 역할 분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18일 ‘수급불안정의약품 생산 지원 사업’의 첫 수행기관으로보령을 선정한 배경에도 이 같은 산업적 특성과 구조적 현실이 깔려 있다.
제약산업은 통상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과 수천억 원의 투자가 필요한 고위험·고비용 산업이다. 규제도 강력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 임상시험 승인, GMP 인증 등 각 단계마다 정부의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시장 논리만으로는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이 존재한다. 채산성이 맞지 않아 생산이 중단된 고지혈증 치료제 ‘보령퀘스트란현탁용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약은 산모와 소아가 사용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고지혈증 치료제였지만, 수익성 저하로 2023년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환자들은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복잡한 수입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정부는 해당 의약품의 중요성을 반영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민간의 자율적 생산 재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공익적 가치를 지닌 의약품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공공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사라지는 구조다. 이는 국내 제약산업이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의약품 공급망이 글로벌 원재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급 불안은 비단 하나의 품목 문제가 아니다. 팬데믹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공급 중단은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원부자재 국산화, 성능시험 지원 등을 통해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령 사례를 계기로 공공성과 산업성이 조화되는 제약 정책 모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투자 인센티브 설계와 긴급 수급체계 연동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약산업은 생명과 직결된 산업이면서도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돈이 되지 않는 약’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산업계와 정부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