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심청 기자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이슈노트에서 일본의 버블 붕괴와 장기침체를 되짚으며,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책적 교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부채, 인구, 기술이라는 구조적 삼각파고에 직면한 현재 한국의 상황을 일본의 전철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980년대 자산시장 과열과 함께 민간부채가 급증했으나, 사전적인 거시건전성 규제가 미비했고, 버블 붕괴 이후에도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결국 금융위기와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2023년 기준 민간부채가 GDP 대비 207.4%에 달하며 일본의 버블기 최고치(214.2%)에 근접하고 있어, 구조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일본은 저출산과 고령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노동시장 유휴인력의 활용도 늦어져 성장잠재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한국도 생산연령인구가 2017년, 총인구가 2020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노동투입의 잠재성장률 기여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교훈을 제시했다.
첫째, 부동산발 부채누증은 사전적으로 관리하고, 필요시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저출산과 고령화에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장기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유휴인력의 질적 활용과 외국인 노동력의 체계적 도입, 출산율 회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셋째, 과거의 성공 경험이 변화와 개혁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국 역시 기존 수출 중심 제조업 모델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반도체와 인공지능 같은 전략산업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넷째, 고령화에 따른 연금 및 의료지출 확대가 재정여력을 갉아먹지 않도록 중장기적 재정건전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경기회복기에는 흑자재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관행이 필요하다.
다섯째, 통화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구조개혁 중심의 체질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통화정책은 경기 대응의 보조 수단일 뿐이며, 성장잠재력 회복은 구조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일본의 사례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성 설정 자체보다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구조의 부실함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국은 정책의 당위성이 확보되더라도 정치적 갈등과 단기 이해관계로 인해 정작 실행단계에서 왜곡되거나 표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구조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쉽게 무산되고, 포퓰리즘적 조치로 전환되면서 본래의 정책목표가 희석되곤 한다.
보고서는 끝으로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며,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구조개혁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