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브루너마이어·마틴 등, ‘Stablecoins’ 보고서 통해 구조와 정책 위험 경고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디지털 자산을 넘어 새로운 그림자 화폐 시스템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보고서는 프린스턴대 마르쿠스 브루너마이어 교수, 뉴욕연준 앙투안 마틴 연구원, 하버드대 조너선 페인이 공동 집필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규제망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급결제와 예금 기능, 나아가 그림자은행 기능까지 수행하면서 기존의 공공 화폐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일부 스테이블코인이 오히려 사적으로 통제되는 폐쇄형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통화 주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에 따라 위험 수준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산으로 담보된 스테이블코인은 겉보기엔 안정적이지만, 담보 자산의 유동성이 낮을 경우 위기 시 뱅크런에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설계 구조 자체에 불안정성이 내재돼 있어, 신뢰가 흔들릴 경우 급격한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라USD(UST)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방치할 경우 사적 화폐가 공공 화폐 인프라를 침식하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달경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자체 플랫폼을 통해 완결형 결제 생태계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공공 결제망과는 별도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금융시장을 형성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금지하거나 방치하기보다는, 공공 인프라를 통해 규율하고 통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중앙은행의 결제시스템에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준비금 구성과 유동성 요건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공공 디지털화폐(CBDC)와의 역할 분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 주도의 사적 화폐가 등장할수록 공공이 지급결제 인프라를 책임져야 할 이유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규제 논의가 기술 중심에서 통화 주권과 공공재의 역할로 확장돼야 함을 시사한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정의와 규제 체계 마련이 진행 중인 가운데, 공공성과 혁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