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기자
“녹색 전환, 단기 인플레이션 유발 가능성… AI, 장기 성장 동력이나 경로 불확실”
3일, 한국은행(BOK) 주최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 이틀 차에는 ‘경제 구조 변화와 통화정책’이라는 대주제 아래 녹색 전환과 인공지능(AI)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세션 4: 녹색 전환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가?
첫 번째로 발표된 논문은 마르코 델 네그로(Marco Del Negro) 미국 뉴욕 연준 경제분석 연구자문위원이 발표한 “녹색 전환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가?(Is the Green Transition Inflationary?)”였다.
델 네그로 위원은 탄소세 부과와 같은 기후변화 완화 정책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 억제와 잠재성장률 달성 사이에 상충 관계(trade-off)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탄소집약적 산업과 그 외 산업 간의 상대적인 가격 경직성 차이가 이러한 상충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탄소집약적 산업의 가격 경직성이 낮을 경우, 탄소세 부과 시 중앙은행이 잠재성장률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플레이션을 용인해야 할 수 있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경기 둔화를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경제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 중앙은행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하고자 할 때 코어 인플레이션율은 약 10년간 목표치보다 0.5~1.0%p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탄소집약적 산업의 가격 경직성이 작고, 에너지 산업이 미국 산업 체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델 네그로 위원은 “녹색 전환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환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경기 하락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며 정책 결정자들이 이러한 상충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션 5: 인공지능이 산출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이어 레오나르도 감바코타(Leonardo Gambacorta) 국제결제은행(BIS) 신흥시장 부서 최고 책임자는 “인공지능이 산출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Output and Inflation)”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감바코타 책임자는 AI 확산이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소비, 투자를 증가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경로는 AI로 인한 미래 생산성 향상에 대한 경제 주체의 예측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가계와 기업이 AI로 인한 미래 생산성 향상을 예상하지 못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디스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이후 총수요 증가로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반면, 미래 생산성 향상을 예상한다면 초기부터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별 분석에서는 AI에 대한 초기 노출도와 산업의 최종 부가가치 증가 간 높은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노동집약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부가가치 증가폭이 작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을 상승시켜 노동집약적 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감바코타 책임자는 “AI 도입은 장기적으로 성장과 투자를 제고할 수 있지만, 경제 주체의 예측 여부에 따른 단기적 인플레이션 충격과 산업 간 이질적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AI 도입을 촉진하는 정책은 단기 물가 안정과 장기 인플레이션 제어에 기여하고, 인구 고령화 등에 따른 장기 수요 위축을 상쇄할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소비재 산업 중심의 AI 확산이 높은 경제적 수익을 가져올 수 있어 정책 수립 시 우선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