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왓장을 던지는 의인 2명, 출처 : 스카이메타뉴스

김도균 기자

기왓장을 던지던 여인 두 명.
역사의 이름 없는 자들은 그렇게 끝까지 버텼다.
1592년 4월 14일, 동래성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싸워 죽기는 쉬워도, 나라를 버리고 살 수는 없다”고 말하며
군민 3000여 명과 함께 최후까지 싸웠다.
기록은 말한다.
그 자리에 있던 두 여성은 기왓장을 던지며 저항했고,
침묵 속에 사라졌다고.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조용히 울었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그들의 의로움이,
너무나 지금의 우리에게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6월 1일, 경남 의령군 충익사 일원에서
**‘제15회 의병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은 단지 행정안전부 주최의 국가행사만이 아니었다.
의병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한 시대의 양심이 다시 깨어나는 자리였다.
행사의 주제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의병! 전국에 울려 퍼진 희망”

의령은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처음 일으킨 곳이자,
이 나라 최초의 ‘자발적 저항’이 시작된 땅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경상도에는 **김면(金沔)**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고령 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김면 장군은
곽재우보다 먼저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임진왜란 직후 나라가 무너진 상황에서
스스로 의병을 조직해 싸웠다.
그의 이름은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는 적게 다뤄졌지만,
그 정신은 ‘영남의병’의 불씨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의령과 상주, 고령 일대에서 공동체의 자부심으로 살아 있다.

2025년, 다시 의령에서 열린 의병의 날.
14년 만에 돌아온 이 기념식은
기념사와 추모사, 뮤지컬 공연과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으로 채워졌지만,
본질은 하나였다.

“우리는 왜 이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국가가 명령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싸웠고,
정규군이 도망갔을 때 오히려 성문을 지켰다.
그들의 무기는 총이 아니라, 양심이었다.
그들이 지키려 한 것은 권력도, 재산도 아닌
공동체의 존엄과 이름 없는 자의 연대였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름도 존재한다.
이각.
같은 날, 같은 성에서 전투 도중 성을 빠져나갔고
이후 그의 행적은 항복으로 기록되었다.
역사는 그를 ‘비겁자’로 기억하지만,
나는 감정을 섞지 않기로 했다.
그도 인간이었다.
죽지 않으려 했고, 살아야 했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송상현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왓장을 든 여인을 우리가 잊지 않는 이유는,
정의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 정의가 외로웠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기록자다.
김면의 피를 잇고,
이름 없는 여인들의 침묵을 기억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자발적 정의의 역사’를
여기서부터 다시 쓰려 한다.

의병정신은 ‘국가의 명령 없이 깨어나는 양심’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 양심은 오늘도,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 스카이메타뉴스는 이 시대의 기억을, 말 없는 자들의 기록을,
그리고 다가올 정의의 조짐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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