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유럽중앙은행 홈페이지

이아종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15년간 유로존 금융기관에 대규모로 공급한 유동성이 일부 은행들 사이에서 ‘유동성 의존(Liquidity Dependency)’을 유발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ECB 워킹페이퍼 시리즈 제3056호에 실린 카를라 소아레스(Carla Soares)의 보고서는 “유럽의 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받은 초과지준 증가에 따라 단기성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s)을 의도적으로 확대해 왔다”며, “이 같은 경향은 특히 2015~2017년 자산매입프로그램(APP) 기간 중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유동성 공급 방식에 따라 은행의 예금 행태가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단기대출(LTRO, TLTRO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예금 행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자산 직접매입을 통한 비차입(Non-Borrowed) 유동성 공급은 은행들의 단기 예금 확대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은행들이 중앙은행 유동성을 ‘상시 공급될 자원’으로 간주하고 위험을 선호하는 행태로 변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보고서는 유로존 은행들이 초과지준이 줄어드는 시기에도 단기 예금 비중을 줄이지 않고 유지하는 ‘비대칭적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소아레스 연구원은 “유동성 공급 확대 이후 은행들의 단기 부채 구조가 유지되는 것은 유동성 충격 발생 시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자기자본비율이 낮고 예금 의존도가 낮은 소규모 은행일수록 이러한 유동성 의존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는 미국의 SVB 파산 사태와 유사한 조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유럽은 미국과 달리 대부분의 은행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적용받고 있어 제도적으로 일정 수준의 안전판은 확보되어 있다는 점도 언급되었다.

이번 연구는 ECB의 향후 통화정책 운용, 특히 대차대조표 축소(QT) 및 금리 정상화 국면에서의 금융안정 리스크 평가에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배경 설명]

  • 유동성 의존성(Liquidity Dependency): 중앙은행 유동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 정책 변화 시 금융기관이 급격한 자금난을 겪을 위험이 높아지는 상태.
  • 자산매입프로그램(APP): ECB가 국채 등 유가증권을 매입하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
  • TLTRO: 유럽중앙은행의 목표장기대출 프로그램으로, 은행에 낮은 금리로 장기자금을 공급.
보고서 표지. 출처 : 유럽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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